사무소

luce e verde

노혁진 2026. 8. 15. 16:35

사무실 이름이 너무 예뻐요. 사무소 개소를 하며 서울건축사신협에 계좌를 만들때 직원분이 해주셨던 이야기다. 사무소 개소를 위해 이런 저런 정보들을 찾다보면 수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나의 에피소드도 여기에 남겨본다.
 
2019년 8월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식이라는 것이 꼭 참석해야하는 중요한 행사라는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이미 한국을 떠나 이탈리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비자 없이 이탈리아에 체류 가능한 최대기간은 3개월이었는데, 그 기간을 가득 채워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의 첫 행선지는 로마였는데, 당시 에어비앤비 장기렌탈로 할인을 쏠쏠히 받아 지냈던 아파트가 있었다. 숙소 이름은 luce e verde. 한국어 이름으로는 빛과초록 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한 달여간 지내면서 공간을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데 빛과 초록(또는 식물 또는 대지로 나는 넓게 해석하려 한다)이 아주 큰 역할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파트라는 공간이지만 넓게 계획된 베란다에 1층부터 자란 나무가 늘어져 있고, 뜨거운 8월의 유럽 햇살이 내리쬐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약간은 어둡고 에어컨은 가동하지 않는 거실 등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는다.
 



9월에 접어들고 저녁 바람이 선선해졌을때, 호스트와 친구들의 홈파티에 초대받았다. 계절이 바뀜을 기념하기 위한 파티였다. 그 베란다에 둘러앉아 모자란 이탈리아어로 뭐든 말하던 그때쯤, 내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이런 이름을 붙여볼만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탈리아 여행은 코로나가 유럽을 뒤덮어 한국행 비행기가 끊기기 전 다행히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건축이론 중에서도 현상학과 관련된 공부를 많이 했다. 그 중에서 단연코 기억에 남는 글은 석사 첫학기 당차게 발제를 맡았던 마틴 하이데거의 Building, Dwelling, Thinking이라는 글이다. 지금도 이 글을 전부 이해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거기 등장하는 Fourfold(보통 사방 이라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듯하다)개념은 건축을 하면서 내가 추구하고 싶은 방향에 대해 많이 공감되는 부분인 것 같다.
 
하늘의 빛과 땅의 초록 사이에 서있는 사람의 자리를 짓습니다. 라는 사무소의 소개문구는 이런 내 경험에서 출발한 것 같다. 물론 Fourfold중 나머지 하나인 divinities와 the simple openess of the four는 내가 어떻게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우리 인간이 하늘과 땅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공간을 만드는데 힘쓰는 사무소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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